(동트는 강원) 제휴칼럼입니다
원문출처-https://www.dongtuni.com/

철원 화살머리고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작은 한 점의 뼛조각이라도……

325점의 유해와 유품 2만3,055점 발굴
325점의 유해와 유품 2만3,055점 발굴

1950. 6.25.
그리고 1953. 7.27.


정전이 성립되기까지 만 3년 1개월 2일간 계속된 전쟁 기간 중 쌍방은 38도선을 각각 3회씩이나 넘나들고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오르내렸으며, 아름다운 산과 들녘에 145만 톤의 폭탄이 항공기로부터 떨어졌고 1,756발의 포탄으로 전 국토의 80%가 초토화 되었다.

한국과 유엔군 전사 17만 6천여 명, 부상 55만5천여 명, 실종과 포로를 포함해 약 4만 2천명의 인명 피해를 입었다. 북한과 중공군은 사망 36만 명, 부상 111만 명, 실종과 포로 14만 5천명. 전국의 61만 가옥과 4203개의 학교가 파괴되고 350만 명의 난민과 300만 명의 월남 동포들이 타향에서 외로움과 기아와 고통에 시달려 그 후유증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남아 있다.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www.withcountry.mil.kr

지난 3월26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
고(故) 박재권 이등중사의 유해 안장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 전술도로 개설 과정에서 수습돼 신원이 확인되었다.
이날에야 비로소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전투 영웅의 영면을 추모했다.
전사자 종합정보체계(KIATIS)에 기록한 뒤 감식을 거쳐 90% 정도 발굴된 유해는 국유단 중앙감식소로 봉송되고 신원 확인 센터에서 정밀 감식과 DNA 시료 채취, 유가족 DNA와 비교 분석을 통해 신원 확인까지 꼬박 5개월여가 걸렸다.
박 이등중사의 여동생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이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오빠를 찾게 된 것만으로도 감격스럽고 감사한다"고 말했다.

휴전 직전이던 7월까지 살아있던 그가 전사한지 꼭 65년만이었다.

6.25 전쟁이 끝난 지 만 66년.
돌아오지도, 다가가지도 못했던 DMZ에서 2018년 역사적인 9‧19 남북 군사합의 이행 조치로 전격적인 유해 발굴이 진행되면서 거둔 실효이다.

지금도 거두지 못한 용사들의 유해만 12만4천여 명.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우리는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그 중심에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에 화살머리고지가 있다.

최대 격전지였던 백마고지 남서쪽 3㎞ 지점. 정전 직전까지 네 차례에 걸친 작전 지역으로 국군 전사자 유해 200여 구와 미국•프랑스 등 유엔군 전사자 유해 100여 구가 매장되었고 전사자 중에는 미군•프랑스군에 배속된 한국인 노무자도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유단은 지난 4월 1일부터 5월 22일 까지 50여구로 추정되는 이들의 뼛조각들을 발굴했다. 총 325점의 유해와 유품은 2만3055점이 발굴됐다.

1주 동안에 식별된 유해가 101점이었다고 하니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을지 상상조차 끔직하다.
지뢰 149발과 불발탄 2403발도 제거됐다. 소총탄을 묶는 탄 클립, M1소총탄들도, 이른바 가미가재형의 전술을 구사하는 ‘동굴형 진지’도 찾아냈다.

국방부는 확인 되지 않은 유해는 유해발굴감식단내 국선제에서 확인 될 때까지 보관할 계획이다. 유엔 군의 경우 상황을 고려해 본국 송환하며 중국군은 매년 3월경 청명절을 앞두고 송환 행사를 갖는다. 북한군으로 판정된 유해는 파주에 있는 북한군 묘지에 안장된다.

현재 이 일을 수행하는 국유단의 장병들은 100여 명.
“유해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작은 한 점의 뼛조각이라도 찾겠다는 일념으로 이 일을 해내가겠다” 는 감식단원들의 인터뷰는 참전 용사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 글 조은노
  • 사진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 "동트는 강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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