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일상풍경 ①

정식 사자성어는 아니지만 매년 여름이 되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있다.

‘칠말팔초(七末八初)’

다 아는 말을 굳이 풀이하자면,

‘7월 말 8월 초는 여름휴가를 떠나는 시기’라는 뜻 정도가 되겠다.

이제는 옛말이라고, 시대에 뒤떨어진 얘기라고 핀잔을 주는 이도 있겠지만 여전히 이 시기가 되면 휴가명소가 있는 주변도로는 전쟁을 피해 떠나는 피난행렬처럼 무더위를 피해 떠나는 피서차량들로 점령당한다. 평균속도 30~40. 멈춰 있는 것도 달리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속도는, 올해도 어김없이 차량엔진과 아스팔트 열기로 달아올라 혈관처럼 이어진 도로마다 몸살을 앓게 할 것이다.

그야말로 휴가 극성수기다.

정수리를 태울 듯 내리 꽂히는 뙤약볕과 잠시만 움직여도 비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염천의 7월, 이어야 하지만 올 여름 더위는 ‘기록적인’, ‘사상최악의’ 같은 수식어로 호들갑을 떨기엔 조금은 쑥스럽다. 거기에는 실로 재난에 가까웠던 지난해의 무더위에 단련이 된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장맛비가 그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올 거라고 하니 지금의 이 말이 무색해질 수도 있겠다.

 

덥든 덥지 않든, 휴가계획이 있든 없든. 이 시기가 되면 사람에 치이고 바가지요금에 시달릴지라도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일상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이고 시선이 자꾸 창밖으로 향하게 마련이다.

더위를 피한다는 뜻의 ‘피서(避暑)’. 익숙한 단어다.

추위를 피한다는 뜻의 ‘피한(避寒)’이라는 단어도 있다. 엄연히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

겨울철에는 휴가가 없어서 쓰지 않을 수 있겠지만 ‘피한 간다’는 말은 생소하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추위보다 더위를 더 못견뎌하는 모양이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기껏해야 부채가 냉방기구의 전부였던 옛날은 어땠을까.

물론 그 시절에도 산이나 계곡에서 여름더위를 식혔겠지만 옛선비들은 책 속으로 피하는 피서(避書)로 피서(避暑)를 즐겼다. 역시 더위 앞에서도 품위를 지킬 줄 아는 이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술 더 뜬 이가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우복(愚伏) 정경세는 무더운 날이면 문을 잠그고 방안에 틀어박혀 염천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더위와 마주하는 ‘접서(接暑)’로 더위를 극복한 것이다. 이열치열의 표본이 여기 있었다. 주위사람들이 ‘혹시 더위를 먹은 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서늘함은 조용한 가운데 온다는 걸 그대들은 아는가?’라고 반문했다.

‘바캉스’는 휴가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그 말 속에는 ‘비우다’와 함께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휴가란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비우고 또 다시 채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챙 넓은 모자, 선글라스, 수영복이 있어야만 기분인가.

쪽빛 바다와 야자수 아래 걸린 그물침대가 있어야만 맛이던가.

 

‘텅 빈 고요 속에서 맞이하는 충만한 서늘함’

그 또한 제법 근사한 피서가 아닐지.

 

중복에 대서를 넘어 여름의 정점이자 무더위의 한 가운데서 맞는 휴가철.

때마침 일상과 일탈사이를 아슬아슬 오가는 월급쟁이 후배가 문자로 휴가계획을 물어왔다.

성실과 상실사이를 마구마구 오가는 프리랜서 선배는 뭔가 ‘있어 보이는’ 문자를 보내야겠다 작정하고 이렇게 적어 보냈다.

 

접서(接暑). 더위를 피하지 않고 더위와 마주하며 보낼 예정.

 

보낸 문자가 후배에게 폼나게 전달 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올 여름 나의 피서는 ‘접서(接暑)’. 이것만은 확실하다.

 

자유기고가 / 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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