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종과 세대를 넘어선 우정, 서로가 서로를 변화 시키는 힘
- 은둔작가의 삶 엿보기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 샐린저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순전히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더 이상 풀들이 자라지 않는다’는 절기 ‘처서’가 지나면서 
여름의 기세는 눈에 띄게 사그라들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밀도 높은 무더위가 서늘한 찬 기운에 
조금씩 헐거워지고 있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무엇 때문인지 문학은 여름보다 가을과 잘 어울려 보인다.
뜨겁고 활기차고 정열적인 계절, 여름보다 
스산하고 쓸쓸하고, 사연 있어 보이는 이의 뒷모습 같은 계절, 가을이 
문학을 논하기엔 제격이지 싶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의 시작과 함께 소개하려고 하는 영화는, 
열여섯 살의 문학 소년과 일흔 살 은둔 작가의 우정을 그린 
구스반 산트 감독의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다. 

2000년 개봉한 영화는, 
그 자체로 '제임스 본드'였던 영화 <007시리즈>의 배우 ‘숀 코네리’와 ‘롭브라운’이 주인공이다. 
전설의 배우 ‘숀 코네리’는 세상으로부터 문을 받아 건 채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위대한 작가로 ‘롭브라운’은 농구 잘하는 흑인 문학소년으로 출연해 멋진 케미를 보여주었다. 

줄거리는,
평소 길거리 농구를 즐기던 소년 자말과 친구들은 
인근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베일에 쌓인 한 남성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어느날 용기를 내 그의 집에 몰래 침입한 자말은
실수로 그동안 자신이 써놓은 습작노트가 든 가방을 그곳에 놓고 오게 된다.
오랜시간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남자는 자말의 습작노트를 읽으며 
그의 비범한 재능을 발견한다. 
가방을 찾기 위해 다시 남자의 집을 방문한 자말. 
그 집에 살고 있는 이는 바로 전설의 작가 ‘포레스터’다. 
그렇게 한 청년에 의해 수십 년간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문학과 글쓰기를 통해 교감하며 특별한 우정을 나눈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 영화 속 최고의 명대사

영화는 제법 근사한 대사들이 눈에 띄었다. 명대사를 통해 영화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다.

“왜 제가 흑인이라는 얘기를 꺼내셨죠?”
“흑인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부당한 얘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려던 거야.”

포레스터가 처음만난 자말에게 건넨 도발적인 대사를 상기하며 
자말이 포레스터에게 따지듯 묻자 나온 대답이다.
처음부터 포레스터는 자말과의 교류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생각을 하지마. 생각은 나중에 해. 
우선 가슴으로 초안을 쓰고 나서 머리로 다시 쓰는 거야.
작문의 첫 번째 열쇠는 그냥 쓰는 거야. 생각하지 말고”

자말이 타자기 앞에서 고민한 채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포레스터가 건넨 대사다.
오랜 글쓰기의 내공과 연륜을 지닌 스승이 제자에게 전하는 글쓰기의 비법처럼
느껴졌다.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답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 일단! 쓰는 거야. 쓰다보면 틀이 잡히고 거친 문장들은 조금씩 다듬어져 
이내 매끄럽게 완성되어 간다. 마치 원석이 귀금속이 되어가듯.

아! 자말이 많이 부럽다. 이런 스승을 옆에 둬서. 그것도 위대한 작가를 말이지. 
그뿐인가. 글쓰는 방법 뿐 아니라 고민을 들어주고, 
거기다 여자친구의 마음을 얻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하~ 자말! 이 부러운 녀석. 

“가끔은 타이프의 단조로운 리듬이 페이지를 넘어가게 해주지.
그러다 자신만의 단어를 느끼기 시작하면 쓰기 시작하는 거야.”

자신의 작품 ‘신념이 성숙하는 계절’을 타이핑하라고 말하면서 건넨 포레스터의 대사.

영화를 보면서 멋진 타자기를 한 대 갖고 싶어졌다.
타닥타닥, 철자를 새긴 날렵한 쇠막대가 종이에 부딪치며 내는 경쾌한 소리. 
글이 문장이 음을 갖는다면 바로 그 소리일 것이다. 

 “정말 최고의 순간이 언제인지 아니?
자신의 초안을 마치고 나서 그걸 혼자 읽어볼 때지.
멍청한 놈들이 자신은 평생 쓰지도 못할 작품을 가져다가 
하루 만에 해체해 놓기 전에 말야.
비평가들이 내가 정말 의도했던 것에 대해서 
이거네 저거네 헛소리를 시작했을 때 난 결심했지. 한 권으로 족하다고.”

왜 더 이상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지 묻는 자말의 물음에 대한 포레스터의 답이다.
단 한 권의 책만 발표하고 이후 자신이 쓴 작품을 더 이상 공개하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그것은 곁가지일 뿐 철저하게 은둔생활을 하며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 
더 크고 아픈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기를.

친애하는 자말에게. 한때 난 꿈꾸는 걸 포기했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심지어는 성공이 두려워서. 
네가 꿈을 버리지 않는 아이인 걸 알았을 때, 나 또한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지. 
계절은 변한다. 인생의 겨울에 와서야 삶을 알게 되었구나. 
네가 없었다면 영영 몰랐을 거다. - 월리엄 포레스터-

포레스터가 자말에게 쓴 편지 내용이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데 그 자체로 두 사람의 인연이 완성되는 느낌이다.
자말이 포레스터를 통해 글쓰기의 방법을 배우고 조금씩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해간다면 포레스터는 자말을 통해 단단히 내 걸고 있던 마음의 빗장 삶의 빗장을 풀고
세상 밖으로 나와 멈춰 있던 계절의 시간을 다시 살게 된다.
 
그들은 서로에게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었고 제자였고, 의지처였다.
서로가 서로를 통해 변화되어 가는 모습, 
흑인소년과 노인의 우정이 깊어져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흐뭇하다. 

의 저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사진출처= 네이버 라이브러리
의 저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사진출처= 네이버 라이브러리

-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사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영화 자체보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를 얘기하고 싶어서다. 
그는 바로 문학사에 남을 세기의 작품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작가다.

세상의 모든 허위와 가식을 벗어던지고 제도화된 학교를 뛰쳐나온 반항기 가득한 
‘홀든 콜필드’라는 희대의 인물이 등장하는 성장소설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유는,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을 총으로 쏘아 사망하게 한 
‘마크 채프먼’이 체포당시 태연하게 읽고 있던 책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10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고전 2위에 올랐다.
(교보문고 선정, 1위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작가 샐린저는 ‘은둔의 아이콘’이었다. 어느 매체에서도 그를 인터뷰할 수는 없었다.
철저하게 비밀스럽고 장막에 감추어진 삶을 살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영화화 하자는 제안에도 소설 속 주인공 ‘홀든 콜 필드’가
싫어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제안을 일거에 거절했다.

해서 나온 것이 ‘파인딩 포레스터’가 아니었을까.
‘은둔 작가의 삶은 이렇지 않을까?’라는 짐작과 상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샐린저가 이 영화를 봤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런데 쇼 코네리는 중후하면서도 괴팍한 노인의 이미지라면 
샐린저는 섬약하고 우수에 찬 이미지다.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고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숀 코네리는 2020년에 샐린저는 2010년에 사망했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포레스터 되기 vs 자말 되기

영화를 보며 기분좋은 상상을 했다.

영화속 주인공 포레스터처럼
세상 모든 독자들이 결코 잊지 못할 세기의 대작을 딱 한 권만을 발표하고 
철저하게 은둔 생활을 하며 여생을 보낸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일단, 그런 작품을 써 내는 것도. 
그리고 그런 삶을 선택하는 것도.

이번에는 자말처럼,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사람과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토론이나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는데 알고보니 유명작가였다면?

문득, 김훈 선생이나 신형철(작가는 아니지만. 그는 문학평론가다), 
이동진(역시 작가는 아니지만. 그는 영화평론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로맹가리 같은 작가들을 떠올렸다.
와우~ 상상만으로 좀 근사해진다. 하지만 이 분들은 적어도 은둔형이 아니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 지음(知音)관계, 서로를 알아보다 

영화는 문학에 대한 치열한 고민도, 이렇다 할 방법도 제시하지 않는다.
굳이 찾는다면 ‘니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정도이다. 
영화는 깊이 있게 문학을 사유하지 않는다. 
글쓰기에 대한 두 주인공의 고뇌도 부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내내 자말을 부러워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우연히 만나 알게 된 이가 
무뎌진 내 감성을 툭툭 건드려 영감을 일으키게 하고 
필력(筆力)의 근육을 키워갈 수 있게 북돋워준다면.  

자말처럼 용기내서 오래 닫힌 그의 집 문을 두드릴 것이다.
포레스터처럼 용기내서 오랜세월 닫아 건 집 문의 빗장을 열고 세상으로 나올 것이다.

지음(知音)관계. 마침내 그렇게 서로를 알아볼 수 있기를. 
내게 와다오. 나의 벗이여. 나의 뮤즈여. 

 

글 : 김혜정 기자 / novellife4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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