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사랑을 잊지 못한 그녀, '와타나베 히로코'
- 첫사랑을 알지 못했던 그녀, '후지이 이츠키'

영화 '러브레터' 포스터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영화 '러브레터' 포스터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 겨울이면 생각나는 영화 '러브레터'

세 번을 보았다. 이 영화 ‘러브레터’를.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가장 좋았다.
모르긴 해도 네 번째나 다섯 번째...회를 거듭해 본다면 그때가 가장 좋을 것이다.
곱씹을수록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맛이 나는 영화라고 할까.

‘러브레터’는 겨울이면 생각나는 영화다.
굳이 경칩도 지난 마당에 이 영화를 꺼내든 이유는...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제대로 겨울을 마무리해보겠다는 필자 나름의 의지다.

영화는 1995년에 만들어진 ‘이와이 슌지’감독의 데뷔작이다.
그는 ‘감성 장인’이자 ‘첫사랑 전문’ 감독이다.
그의 대표영화 두 편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러브레터>와 <4월 이야기>일 것이다.

‘4월 이야기’가 은은한 녹차빛을 머금은 ‘봄 영화’라면
‘러브레터’는 눈부신 설원이 펼쳐진 ‘겨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두 영화는 모두 (첫)사랑에 대한 얘기다.

감독은 “내가 했던 모든 영화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라고 본인 스스로 얘기하기도 했다.

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서두가 길었다. 일단 영화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여기 '히로코'라는 여성이 있다.
그는 연인이었던 이츠키 3주년 추모식에 참석한다.
이츠키 엄마를 태워다 주면서 그의 집에 방문해 우연히 보게 된 중학교 졸업앨범에서 죽은 연인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을 찾아내고 그 이름 아래 적힌 주소를 팔에 메모한다.

‘오타루 시(市) 제니바코 2-24’

그곳으로 편지를 보낸다.
지금은 도로가 생겨 사라져버린 주소로.

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여기 ‘이츠키’라는 또 다른 여성이 있다.
오타루에 사는 이츠키는 감기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에게 한 통의 편지가 전해진다.

히로코는 이제는 세상에 없는 자신의 연인에게 편지를 보내고
‘동명이인’인 이츠키는 낯선 여성에게서 온 편지를 받는다.

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그러니까 히로코는 자신의 연인이 아닌 동명이인의 여성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후지이 이츠키’는 중학교 같은 반에 배정된 이츠키와 같은 이름을 가진 남학생이자
산에서 조난당해 사망한 히로코의 연인이었다.

‘와타나베 히로코’와 ‘후지이 이츠키’
두 여성은 그렇게 3년 전에 사망한 ‘후지이 이츠키’라는 남자를 매개로
그의 지난 시간들을 추억하며 편지를 주고 받는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1인 2역을 맡은 나카야마 미호. 극중 '후지이 이츠키' 모습 (사진출처=네이버영화 라이브러리)
영화 '러브레터'에서 1인 2역을 맡은 나카야마 미호. 극중 '후지이 이츠키' 모습 (사진출처=네이버영화 라이브러리)

영화는 배우 ‘나카야마 미호’가 1인 2역을 맡았다.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이 한 배우인 것이다.
그로인해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되면 대체 이 여인이 저 여인인가? 누가 누구지?
두 사람이 헷갈려 도무지 영화 자체에 몰입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1인 2역을 맡은 나카야마 미호 극중 '와타나베 히로코' 모습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영화 '러브레터'에서 1인 2역을 맡은 나카야마 미호 극중 '와타나베 히로코' 모습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히로코’가 여성스럽고 수줍음 많고 소극적인 성격이라면
‘이츠키’는 씩씩하고 자기 주관이 강하며 조금은 덜렁대는 캐릭터다.

극중 인물에 대해 이해하고 나면 영화는 꽤나 촘촘하고도 짜임새 있게
엮여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줄거리 소개를 이렇게나 장황하고 길게 하다니...
열 번의 설명을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지 이건 뭐..

요약하자면 ‘후지이 이츠키’라는 한 남자의 죽음 이후, 시간이 흐른 뒤에
그 남자를 사랑했고, 그 남자가 사랑했던 ‘두 여자의 편지’를 통해
잊혀졌던 첫사랑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 오겡끼 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

4월 이야기가 봄날의 벚꽃같은 이미지로 남는 영화라면
‘러브레터’는 대사로 남는 영화다.
영화 속 대사는 너무도 유명해서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오겡끼 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잘 지내요)”
히로코가 자신의 연인 ‘이츠키’가 조난당해 사망한 설산을 향해 외치는 장면.
이후 참으로 무수히 패러디 되기도 했고, 참 많이 등장했던 장면이다.
내 기억 속에서 히로코는 이 대사를 한, 두 번 외치는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무려 다섯 번을 목놓아 외쳤고, 생각보다 애절했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영화는,
잊고 있던 학창시절의 장면들을 다시금 눈앞에 불러 세운다.

잔잔하게 흐르는 피아노 곡을 배경으로
‘도서관’, ‘우체국’, ‘편지’, 그리고 마음 속 어딘가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비눗방울처럼 풋풋했던 '첫사랑'의 기억까지.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특히 새하얀 커튼이 휘날리는 햇살 가득 들어오는 창가에 서 있는 잘생긴 남학생 이츠키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청춘의 낭만과 뭇소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감성 포텐 터지는 장면이 아닐지.
이 장면은 이후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인용되기도 했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 ‘죽은 사람을 어떻게 추억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하나의 방식

청춘 영화, 감성영화로 불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러브레터’는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미 죽은 남성을 추억하며 편지를 주고받는 두 여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만큼 모든 부분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그래서 영화는 다시 볼수록 결코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두 여성의 감정을 통해 오래되어 흐릿하지만 함께 했던
학창시절의 많지 않은 일화를 통해
이미 세상에 없는 삶을 애도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한다는 것,
그것이 편지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꽤 근사하게 느껴졌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라이브러리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
히로코가 연인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설산을 향해 절규하듯 외쳐대던 말.

“오겡끼 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

무수한 영화의 명대사 반열에 올라있다.
물론 그 장면이 애절하고 아름다워서이기도 하겠지만
필자는 거기에 남다른 의미부여를 하나 더하고자 한다.

만약 당신이
가장 사랑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에게
무슨 말인가를 전한다면 그때 과연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대상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하는 순간에
할 수 있는 말은 사실 많지 않을지 모른다.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냅니다.”

“오겡끼 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가 오래 뇌리에 남는 이유다.

 

글 : 김혜정 기자 / novellife405@hanmail.net

저작권자 © 경기북부데일리(kbdail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