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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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은 서른 둘에 죽었다.
1964년 1월에 태어나 1996년 1월에 죽었다. 올해로 28년.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읊조리던 그는
노래 제목 그대로 ‘서른 즈음에’ 떠났다.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청춘도, 떠나보낸 것도 떠나온 것도 아닌 사랑도,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간다고, 누군가의 표현처럼 ‘담담한 저릿함’으로
삶을 관조하듯 나직이 내뱉는 그의 목소리는 퍽 위로가 되었다. 

그와 함께 한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노래에 의지했다.
삶의 볕하나 들지 않는 춥고 암울했던 시간. 
마음의 골절을 앓고 절뚝이며 걷던 그때,
그의 노래는 움츠린 어깨 사이로 감춘
꽁꽁 언 두 손을 내밀어 쬘 수 있는 화톳불 같았다.

그 온기에 기대어 서성이다 보면 마음 속 어딘가를 떠돌던 빙하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눈가는 촉촉해졌다.
손이 아니라 얼었던 마음이 녹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화려한 연주는 필요 없다.
담백한 기타 한 줄과 바람소리 같은 하모니카 선율이면 충분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야 살기 위해 내뱉는 ‘숨비소리’처럼
오래 참다 마침내 한 숨처럼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는
오종종 눈물방울을 매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오래 불러온 노래들은 습기를 머금어 무겁게 내려앉은 느낌이다.
꾹 쥐어짜면 바닥이 흥건할 것이다.

사람마다 손가락에 고유의 ‘지문’이 있듯 고유의 목소리 ‘성문(聲門)’이 있다.
후두부 아래쪽에 잡힌 주름이 떨리며 내는 소리. 
한 소절에도 무수히 떨리는 진동, ‘비브라토’는 공명하며 상대방의 귓가에 스민다.

사람마다 마음의 악기가 있는데,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들을 때면
그 악기가 소리를 낸다. ‘심금(心琴). 그의 노래들은 오래도록 우리의 심금을 울렸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어제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같은 애틋함도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같은 절규도

‘나의 눈물이 네 뒷모습으로 가득 고여도 나는 떠날 수는 없을 것만 같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같은 담담함도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같은 다독임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흔들리고 넘어져도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있는 한 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같은 흥겨움도

‘나는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같은 낭만도

기타 하나 품고 의자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며 부르던 그의 노래에는
인간사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
  
이십대 시절, 딱 한 번 공연장에 그의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소극장 공연 1000회를 기록한 직후였을 것이다.
1991년부터 1995년 그는 학전 소극장을 중심으로 라이브 공연을 가졌고
마침내 천회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그의 공연을 보던 날
그때의 내 감정이 어땠는지는 물론 기억에 없지만
그때부터 그는 이미 내게 최고의 가수로 자리 잡은 것만은 분명하다.

김광석을 검색어에 적으면 ‘보고싶다’와 ‘그립다’라는 글이 유독 많다.
기대고 의지할 무언가를 잃어버린 이들이 그가 남기고 간 노래를
흥얼거리며 불씨를 지피고 있는 것이다.
후후 불어대는 입김에 습기 머금은 노래들은
매캐한 연기를 피워 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게 하고 목울대를 턱 막기도 한다.

부재(不在)에 대한 애달픔, 함께 나이 들어가지 못한다는 아쉬움.
끊임없이 불러내도 결코 현재가 될 수 없는 서글픔.     

그래서 그의 노래는 더 애절하다.

그것은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떠난 그의 비극적인 삶도 한 몫 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대한 뉴스 사회면스러운 의문을 남긴 채
영정 사진 속 그는 참으로 해맑게 웃고 있을 뿐이다.

‘천재 예술가’라는 수식어 뒤에는 묘하게 ‘요절’, ‘비극’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걸 보면 그 또한 어찌해볼 수 없는 운명인 것일까.
 
마지막으로 어느 블로그에 적힌 글을 옮겨본다.

그의 노래는
그의 노래가 아니라
나의 노래예요.
가슴으로 아껴주세요.

그가 당신 곁에 없다고 해서
아쉬워마세요.

노래는 살아서
여기 바로 당신 옆에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그가 전해달래요.

‘행복하세요.’

 

글 : 김혜정 기자 / novellife4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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