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을 담아 노래한 시대의 예인(藝人)

가수 김세레나 (사진=편종원 매니저)
가수 김세레나 (사진=편종원 매니저)

민요의 여왕, 김세레나를 만나다

그 큰 눈은 유난스레 반짝였다.
보석을 여섯 개나 일곱 개 쯤 새겨 넣은 것 같았다.
인형 같은 얼굴에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현란한 춤사위로 구성지게 노래하던 
TV속 모습은 무대조명보다 더 화려하고 눈부셨다.

데뷔 후 반 백 년의 시간을 민요의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가수 김세레나씨를 만나러 가는 길에 필자가 떠올린 기억 속 그녀의 모습이다.

5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마주한 그녀는 여전히 군살 하나 없는 몸매에 
고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네 전통가락을 노래한 이국적인 이름을 가진 가수.
그 부조화가 묘하게 어우러져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겼다.   

사진=네이버 자료실
사진=네이버 자료실

고양시와의 인연, 어머니 품같은 곳

그나저나 그녀는 고양시와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 

“어머니가 이곳에서 태어나셨어요.
그래서인지 고양시는 올 때마다 아늑하고 넉넉하게 맞아주는 어머니 품 같은 곳이에요.”

그녀의 유일한 친인척이 현재 일산동구에 살고 있어 친정을 찾듯 자주 방문한다고 했다. 일주일에 두 세 번, 사람들 만나러 때론 울적할 때나 지칠 때마다 찾아와 쉬어간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과 문화행사들이 열리지 않고 있지만 공연을 통한 봉사활동과
지역민들을 더 가까이에서 만나기 위해 꾸준히 지역무대에 서 왔다고 한다. 
앞으로도 고양에서 펼쳐지는 무대나 공연 기회가 있다면 자주 서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사진=네이버 자료실
사진=네이버 자료실

드라마 같고 소설 같은 삶을 살다

가수로 활동해온지 올해로 56년이 된 가요사의 살아있는 전설.
질곡 많은 역사를 관통해 온 그녀의 삶 자체가 드라마이자 소설 같은 시간이었으리라.

오랜 시간을 거슬러 데뷔시절부터 시작된 장엄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그녀의 삶의 궤적을 함께 걸어보기로 했다. 

국악예고를 장학생으로 다녔을 만큼 노래와 춤 실력을 겸비한 그녀는
예고 2학년이던 1965년 동양방송 ‘가요백일장’에 
친구들과 재미로 예선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연말 최종 결선에서 장원을 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우리나라 첫 오디션 프로였다. 

이후 그녀는 본격적인 가수활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던 민요에 생명을 불어넣듯 
흥과 기교로 자신만의 창법을 만들어 ‘신민요’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사진출처=네이버 자료실
사진출처=네이버 자료실

그동안 부른 민요만 공식적으로 300여곡. 
‘갑돌이와 갑순이’, ‘새타령’, ‘꽃타령’, ‘까투리사냥’, ‘성주풀이’, ‘창부타령’ 등 
발표한 앨범은 100여장이 넘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노래들은 모두 전통민요에서 새롭게 편곡되어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불러졌고 오랜 기간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그녀를 ‘민요의 여왕’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사진=네이버 자료실
사진=네이버 자료실

가슴 뜨거운 애국심을 심어준 '월남공연'

데뷔하자마자 대중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전성기를 보내던 그녀는 
인기의 달콤함에 취해 있지만은 않았다. 
데뷔 2년 후인 1967년 월남파병 위문공연을 가게 된다. 

그녀는 무수한 공연 가운데 가장 보람 있었던 공연으로 ‘월남공연’을 꼽았다.

여느 가수나 연예인들은 한 차례나 두 차례 방문이 전부인 월남공연을
그녀는 1967년부터 1970년까지 총 네 차례나 자진해서 다녀왔다. 
당시 전쟁이 한창이어서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엄혹한 분위기였다. 
실제로 공연 도중 무대 앞으로 포탄이 떨어지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50미터 앞에 떨어진 포탄이 다행히 불발탄이어서 구사일생 살아남았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월남까지는 군비행기를 타고 2~3일이 소요되는데 
전쟁중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과 함께 비행기에 오른 적도 있었다. 
나라를 위해 그 푸른 청춘을 바친 이들의 숭고한 삶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일련의 사건들은 그녀에게 가슴 뜨거운 ‘애국심’을 심어주었다. 
이후 월남전 공연을 갈 때마다 진심과 열정을 다해 노래했다. 
몸을 아끼지 않고 노래를 불러 많은 장병들로부터 
어떤 가수들의 무대보다 뜨거운 박수갈채와 앵콜 요청을 받았다.

한번은 월남전 공연 당시 병사 한 명이 그녀에게 속옷을 벗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일도 있었다. 
여성 속옷을 지니면 총알을 피할 수 있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민망함을 무릎 쓰고라도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그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녀는 치마보다 더 길게 내려오는 헐렁한 군인용 속옷을 옷핀으로 접어 입고 
무대에 선 적도 있었다. 

가수 김세레나 (사진=편종원 매니저)

300여곡의 민요를 불렀지만 가장 마음에 남는 노래 한 곡을 꼽는다면 
어떤 노래인지를 물었더니, 오래 생각을 한 뒤 ‘갑돌이와 갑순이’를 꼽았다.
월남파병위문공연 때 병장들이 떼창을 하며 한 마음이 되어 같이 불렀는데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또한 미국과 일본 동포들을 만나기 위해 해외 공연도 자주 다녔다. 
타국에서 핍박받으며 눈물 젖은 돈을 벌던 시절이었다.
그녀가 부르는 민요를 들으며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힘겹게 벌던 돈을 쥐어주기도 하고 심지어 다이아몬드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그리운 고국 땅에서 온 가수가 민족의 노래를 불러주니 
어찌 눈물이 나지 않고 감동을 받지 않았겠는가. 

모두에게 지금은 무뎌진 단어 ‘동포애’와 ‘애국심’을 온 몸으로 경험한 순간들이었다.

 

글 : 김혜정 기자 / novellife4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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