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을 담아 노래한 시대의 예인(藝人)

사진출처=네이버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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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라는 수식어의 여왕

입으로 노래하는 가수가 아닌 마음으로 노래하는 가수가 된 민요의 여왕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가장 많은 가수로도 알려져 있다.

최초로 ‘가요백일장’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해 가수로 데뷔했고, 
최초로 ‘패키지쇼’를 만들어 공연했다. 친근하게는 ‘보따리쇼’로 불리는 패키지쇼는,
민요, 가요, 팝송, 탭댄스, 고전무용, 콩트, 코미디, 진행까지 모든 장르가 어우러진 멀티 복합공연이다. 
한, 두 곡의 노래만 부르고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 서비스 차원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최초로 청와대 공연을 가장 많이 한 가수이며 국가행사의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른 가수이기도 하다. 

또한 월남전 뿐 아니라 국내 전방과 후방부대에서 가장 많이 공연한 ‘원조 군통령’이기도 하다. 
거기다 최초로 국가유공자증을 수여받은 연예인이다. 
그뿐인가. '데뷔 이후 수입이 가장 많았던 연예인'으로 기록될 만큼 
활동 초기부터 7년간은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입만 벌려도 돈이 들어오던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미모와 노래실력은 물론이고 모든 장르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엔터테이너였던 그녀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00년에 한 번 나올법한 가수’, ‘우리나라의 국보’라는 말로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사진=편종원 매니저
사진=편종원 매니저

질곡 많았던 연예인으로서의 삶

100년에 나올만한 국보급 가수라는 찬사를 받으며 화려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녀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연예계 데뷔해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힘으로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역경 또한 많았다. 
지금처럼 기획사도 없고, 매니저 시스템도 없이 맨 몸으로 부딪쳤다. 
공연을 하면 여느 출연가수들보다 반응이 좋아 
박수갈채와 앵콜요청이 쏟아졌고 인기는 날로 치솟았다.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만큼 감내해야 하는 일 또한 적지 않았다. 
시기와 질투, 비일비재했던 뜬소문과 사투를 벌여야했다. 

억울함도 많았지만 속마음을 털어놓고 소통할 곳 하나 없었다. 그것들은 오롯한 상처가 되었다. 

‘신민요’라는 장르를 대중화하기도 했지만 전통 국악 장르와 가요 장르 사이에서 
이방인 취급을 당하며 설움도 많이 받았다. 

지난한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경험하고, 휩쓸리기도 하면서 거대한 격랑을 헤치며 넘어왔다. 
갓 스물을 넘긴 여인이 감내하기엔 버겁고 고단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돌이켜보면 한낮의 꿈처럼 순식간에 지난 것 같다고 했다.
여전히 반짝이는 그녀의 눈이 곡절 많았던 어느 한 시절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부른 ‘태평가’의 한 대목처럼 인생 일장춘몽 아니던가.

사진출처=네이버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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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kg' 몸매비결, '옷에 몸을 맞추다'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이 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며 생활하고 있다.

데뷔이후부터 지금까지 몸무게가 45~46kg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체질이 아니라 철저한 관리와 운동을 통해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노래를 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건강해야 해요. 
천여 벌이 넘는 무대 옷도 35년째 입고 있어요.” 

몸에 옷을 맞추는 게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추는 것이 그 비결이라고 했다. 
매일 만보 이상을 걸으며 근력과 폐활량을 높이고 노래연습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단다. 
이렇듯 스스로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이유는, 
그동안 받은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프로다운 면모가 엿보였다.  

사진출처=네이버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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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이들의 '삶의 숨구멍'이 되어주다

민요(民謠)가 ‘백성의 노래’를 의미하듯  
그녀의 노래는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숨구멍이었다.

그녀는 다가설 수 없는 별처럼 관객과 멀찍이 떨어져 노래만 하는 가수는 아니었다. 
눈부신 조명 가득한 무대에서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인기 맨 꼭대기에 서 있었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주저 없이 다가가 
두 손을 내밀어 맞잡아주고 따스한 품을 내어준 사람이었다.

자신이 부르는 노래장단에, 시름 가득한 얼굴이 미소로 번지고, 
삶의 무게에 짓눌린 무거운 어깨가 이내 흥겨운 어깨짓이 되는 
신기한 조화 속을 경험할 때마다 
가수로서의 자부심과 연예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다. 
천생 가수, 천생 민요의 여왕의 운명을 타고 났다.

오랜 세월 가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으로 남는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노래했어요. 한 곡, 한 소절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어요. 그곳이 큰 무대든, 작은 무대든, 포탄이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무대든, 
단 몇 사람이 모인 허름한 무대든 상관없었어요. 
관객들과 교감하고 소통하고 하나가 되어 어우러진 시간들이었기에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요, 
매 순간 정성을 다해 노래했다 자부합니다. 가수로서 그게 가장 큰 보람이에요.”

사진=편종원 매니저
사진=편종원 매니저

반 백 년이 넘는 가수생활을 하며 서온 수천수만의 무대. 
온 마음을 다해 노래했기에 오랜시간 그녀는 가장 비중있는 가수들에게만 허락한다는 마지막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거저 주어진 것은 없었다. 피와 땀이 스민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을 뿐.
 
앞으로의 바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독보적인 가수’로 불리길 바란다는 짧고 굵은 답을 남겼다.

그녀는 이미 ‘독보적’이다. 이 모든 글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다가오는 추석명절을 맞아 특집으로 꾸며지게 될 ‘가요무대’에 서기 위해
그녀는 운동과 노래연습을 병행하며 맹훈련중이라고 했다. 
가수로서 현재진행형인 그녀의 ‘독보적인 무대’가 기대된다.

 

글 : 김혜정 기자 / novellife4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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